한동안 비워져 있던 블랑 로제에 활기가 찾아들었다. 두어달, 블랑 로제의 주인과 그 가족들은 본국에 다녀왔고, 그 사이 가신들은 원치 않은 자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본국에서 보내졌던 총사만이 유일하게 함께 본국으로 향했고, 세스티나가 가장 처음으로 들인 가신이었던 케이시스에게는 발레리아의 신변 보호라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토르쉐 박사와 까뜨린느의 협조로 둘은 토르쉐 저택에서 두어달을 보냈고,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한 두 달 뒤, 엘레인 공작 세스티나 엘레인 폰 슈타인베르그는 블랑 로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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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편지가 왔어요."
세스티나는 간만에 돌아온 신대륙의 저택에서 홍차를 홀짝이다가 엘레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큰오빠의 연인이자 차기 본가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자 아카데미의 선배. 세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레나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언니가 가져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마침 제가 받았을 뿐이니까."
그보다 누구한테서 온 편지인지 확인 안 해봐도 돼요? 라는 엘레나의 물음에 세스티나는 제 손에 들려있는 편지에 찍힌 밀랍 인장을 바라보곤 웃었다. 엘레나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곤 세스티나는 편지를 가볍게 팔랑였다.
"친한 동생한테서 온 편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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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방에 돌아온 세스티나는 종이칼로 편지 봉투를 잘라냈다. 편지를 꺼내고 빈 봉투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세스티나는 편지를 읽어내렸다. 블랑 로제에 돌아왔단 얘길 들었어요, 본국은 어땠나요, 로 시작되는 친근감 어린 문장이었다. 세스티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본국에 있는 동안 꽤 재미있는 얘길 들었는데.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읽어내려간 세스티나는 마지막에 적힌 이름을 소리없이 읽었다. 카욜라 공작, 이블린 밀라 델 카욜라. 이브. 세스티나는 일어나서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블랑 로제에 찾아 올래, 아니면 내가 그랑 플뢰르로 찾아갈까. 이걸로 요약될 수 있는 편지를 쓰며 세스티나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