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고녹] Noctern
Posted 2012. 8. 29. 14:41아나 나한테 벨을 다시 쓰게 하다니 슈토쿠 1학년 콤비 너네 제정신이야?
진짜 귀여운 듯.
길진 않고 짧습니다. 벨이니 따로 비번도 안거는 나란 여자.
+ 그리고 설정에는 언제나 날조가 존재하죠 하하하... 미도리마 특기가 피아노인건 사실입니다.
처음 부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신입부원 환영회에서 타카오가 의아해 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신입 부원들의 장기 자랑 비슷한 것이 진행되던 때, 미도리마에게 차례가 돌아왔던 때였다. 미도리마는 '제가 할 수 있는 특기는 여기선 불가능하니 다음 사람에게 넘기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노래라던가, 그런 흔한 장기가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
조금 특이한 성격인 에이스와의 관계가 단순한 팀메이트에서 더 가까운 사이가 된 이후에도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그 '장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사실 물어볼 필요성을 별로 못 느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지만.
그리고 인터하이를 지나 여름방학. 합숙이 끼어 있던 그 여름방학도 끝나고 윈터컵이 진행되고 있던 초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합창 대회의 반주자, 가능한 사람?"
HR 시간의 그 한 마디가 시발점이었다. 교실이 술렁이는 동안에도 미도리마는 자기와는 관계 없는 얘기라는 듯, 읽고 있던 책장만을 넘기고 있었다. 슈토쿠는 학원제 첫 날 전교 합창대회가 열리는 것이 관례였다. 학원제를 앞두고 3일에 걸쳐 열리는 사전 예선에서 통과한 전학년 중의 다섯 학급의 결승전으로 슈토쿠의 학원제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종의 명물같은 것이었다. 1학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도리마의 반 역시 준비를 시작하는 차였지만 중요한 반주자가 없었다.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
담임이 난감한 표정으로 반 전체를 둘러볼 때 쯤, 미도리마는 책에서 슬쩍 눈을 떼고 교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미도리마를 시선 끝에 담아두고 있던 타카오는 그 움직임에 '어?'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교실을 물끄러미 둘러보던 미도리마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더니 책을 덮고, 손을 들었다. 타카오는 그 동작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아무도 없다면 제가."
"아, 미도리마 군. 괜찮겠어? 농구부 일이라던가."
"연습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참가해도 된다면."
담임이 '살았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도리마가 들었던 손을 내린 뒤 다시 책을 펼칠 때 까지, 타카오는 멍하니 미도리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
"신쨩, 피아노 칠 줄 알았어?"
음악실에서 담임과 미도리마의 얘기가 끝날 무렵에 슬쩍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타카오는, 담임이 나가기가 무섭게 미도리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흘끗, 안경 너머로 타카오를 바라본 미도리마가 건반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는."
"설마 전에 '장기'라고 했던 게 피아노?"
"'특기'다."
그게 그거잖아. 한숨 섞인 미도리마의 답변을 가볍게 맞받아 친 타카오는 말끄러미 미도리마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웃음 섞인 말투. 사실 어느 정도는 장난이었다. 크게 기대도 하지 않은.
"신쨩, 아무거나 하나 쳐 줘."
"... 내가 왜."
"에이, 괜찮잖아. 닳는 것도 아니고. 아, 손가락에 무리가 간다거나 그런거면 간단한 거여도 되고, 짧게여도 되니까."
"친다고 해서 알긴 하나."
"우와, 너무해, 신쨩. 날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
짐짓 우는 체 하는 타카오에게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라.' 라며 툭, 내뱉은 미도리마는 다시 한 번 흘끗, 타카오를 바라보았다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바로 앉으며 입을 열었다.
"... 한 번 만이다."
"응응."
근처의 의자를 끌어와서는 의자 등받이를 끌어안듯 하고 앉은 타카오는 피아노 앞의 미도리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도 꼼꼼하게 테이핑 되어 있는 길고 흰 손가락이 건반 위에 놓였다. 악보는 따로 펼쳐져 있지 않았다. 숨을 고르듯, 아니면 머릿 속에서 곡을 고르듯. 미도리마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건반을 눌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방과후의 음악실에 쏟아지는 노을이 흰 건반과, 흰 테이핑과, 흰 손가락을 옅은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단 둘 뿐인 음악실에 음악이 차올랐다. 클래식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은 편도 아닌 타카오도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 녹턴이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움직이던 손가락이 마지막 음을 누르고는 멎었다. 시작할 때 들이쉰 숨을 내뱉듯, 천천히 숨을 내쉰 미도리마는 약간 고개를 돌려 타카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미간을 살짝 좁혔다.
"... 뭐냐, 그 표정은."
"... 에?"
"사람에게 부탁해 놓고 그 멍한 표정은 뭐냐고 묻고 있는 거다."
"에? 나 멍한 표정이야?"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지적에 손을 올려선 제 입가며 뺨을 짚었다. '어, 진짜네.' 라며 멍하니 중얼거린 타카오는 다시 한 번 미도리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타카오의 입에서 한 마디가 절로 흘러나왔다.
"신쨩, 멋있어."
"... 하?"
첫 마디를 꺼내자 그 다음 문장은 마치 줄줄이 딸려나오듯 흘러나왔다. 등받이에서 조금 더 몸을 내밀듯 하며, 타카오는 말을 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배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진짜 멋있어, 신쨩!! 나 지금 엄청 두근거린다고!! 악보 없이 친 거잖아? 외운거야? 진짜 대단해, 프로같아!!"
".... 호들갑이 심하다, 타카오."
"진심이라니까, 진짜!! 신쨩, 한 곡만 더 쳐줘, 응?"
"방금 한 번 만이라고 한 건 어디로 들은거냐!!"
미도리마가 버럭, 했지만 타카오는 굽히지 않았다. '응? 신쨩, 하나만 더. 응?' 답지않게 끈질기게 조르는 타카오를 보던 미도리마는 아예 피아노 옆에 와 서는 걸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반 쯤 돌렸던 몸을 바로하며 약하게 짜증섞인 말투로 내뱉듯 말을 꺼냈다.
"알았으니까."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그 대답에 '신쨩 최고!!'라며 웃었다. 그 웃음에 묘하게 울컥하면서도 짜증을 낼 마음은 들지 않았던 탓일까. 짧게 혀를 찬 미도리마는 건반 위에 손을 잠깐 얹었다가, 힘껏 건반을 눌렀다. 벼락이 치는 소리와도 닮은 몇 개의 음이 내리 꽂혔다. 그랜드 피아노 곁에 서서 반 쯤 기대다시피 한 채 미도리마를 보던 타카오가 그 굉음에 가까운 소리에 움찔, 하는 것이 미도리마의 시야 끝에 잡혔다. 운명 교향곡의 첫 프레이즈를 있는 힘껏 친 미도리마는 제 유치한 짓에 제가 질려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됐..."
그 순간, 멍하니 미도리마를 바라보던 타카오가 기어코 피아노 위로 무너져 내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큭큭거리며 고개를 든 타카오의 눈꼬리에는 물기마저 맺혀있었다. 슥슥, 웃다가 새어나온 눈물을 훔쳐내며 타카오는 웃느라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미처 가시지 않은 웃음기가 목소리에 여전히 배어 있었다.
"아, 신쨩, 진짜 최고..."
"시끄럽다. 실컷 웃다가 연습에 지각이나 해라, 바보."
쾅, 소리가 나게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닫은 미도리마는 타카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뒤에서 팔목을 잡아 끌어당기는 손이 있었다. 예상 외의 기습에 미도리마가 균형을 잃고 뒤로 휘청, 하며 몇 걸음 물러섰다.
"신쨩, 진짜 좋아."
바로 귓가에서 들려온 웃음기 어린 낮은 목소리. 그 기습같은 고백에 미도리마가 미처 입을 열지도 못한 채 타카오를 바라보자, 가늘게 좁혀진 눈이 웃었다.
"... 너 대, 체..."
"에, 뭐야. 한 번으론 부족해? 신쨩, 좋아해."
신쨩이 듣고 싶은 거라면 몇 번이고 얘기해 줄게. 좋아해. 언제나처럼 웃으며 몇 번이고 속삭이는 타카오의 목소리에 미도리마의 귓가가 노을빛에 물들듯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세를 바로 하고 타카오의 손을 뿌리치듯 털어낸 미도리마가 가볍게 몇 번인가 헛기침을 했다. 그런 미도리마를 바라보며 타카오가 소리 없이 웃었다.
"...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연습이나 가라."
"신쨩은?"
"... 뒷정리는 하고 가야 할 거 아닌가."
"같이 지각하지 뭐. - 그래서 신쨩, 대답은?"
싱글싱글 웃으며 올려다 보는 타카오를 흘끗, 바라본 미도리마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타카오가 끌어다 놓은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툭, 내뱉듯 입을 열었다.
"... 당연한 걸 묻지 마라."
"그런 거 말고."
"... 좋, 아한단 거다. 바보."
들릴듯 말듯. 하지만 확실히 들린 그 대답에 타카오는 제게 등을 보이고 있는 미도리마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신쨩, 좋아해, 진짜, 제일. 제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타카오를 떼어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듯 얕게 한숨을 내쉰 미도리마는 타카오에게 보이지 않게, 아주 조금 웃었다.
타카오가 참 애정표현이 스트레잇한 녀석이라 좋고.
미도리마가 츤데레라 좋은 고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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