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Zero] 02.
* 이쯤가면 레알 도데모이이.
* 5화보고 랜서&길가에게 선덕선덕....
* 그리고 본편과 관계 없는 숨 돌리는 화.
"3기사 클래스라니, 운이 따라준 모양이네."
침대에 걸터앉아 그렇게 중얼거린 아야네는 창가에 서 있는 랜서를 흘끔 바라보고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한동안 익숙해 지긴 어려울 것 같은 자신의 서번트는, 그 때도 지금도 아마 거리를 걸어다니면 본의아니게 여자들을 홀릴 법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천천히 얘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방으로 돌아온 다음 랜서를 방치해 두고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본 결과 대략적인 파악은 할 수 있었다. 디어뮈드 오 디나. 피오나 기사단 제일의 전사. 그러나 주군의 여자와 눈이 맞았다, 고 해야 하나, 그런 연유로 썩 좋은 최후를 맞은 건 아닌.
그런 과거와는 관계 없이, 조금은 흐트러진 듯 하면서도 사실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야네는 그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반응하는 랜서와 눈이 마주쳤다. 진중한 금빛 눈동자. 아야네의 입에서 툭, 하고 별 상관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 뭔가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약한 근심이 어린 목소리.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생각하며 아야네는 조금은 힘없이 웃었다. 저렇게까지 진지한 대상을 상대하는 건 솔직히 익숙하지 않았다.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까. 자신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상대 역시도.
"일단 그 말투부터.... 아니, 됐고. 올려다 보기 목 아파. 그러니까 앉아. 거기 의자 있지?"
한 손을 들어 창가쪽에 놓인 책상 의자를 가리키자, 랜서는 순순히 아야네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이상할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 그러니까, 랜서."
"예, 주군."
"일단 그 '주군'이라는 호칭부터 어떻게 해 줬으면 하는데...."
"... 어떻게, 라 하심은?"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해 진 아야네는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그보다도.
"... 왜 내가 주군인건데?"
"성배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제가 전력을 다해 지켜드리고, 성배를 바쳐야 하는 계약자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계약'의 관계일 뿐이잖아."
그래, 일시적인 기간 동안 서로 협력하는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야 했다. 어차피 성배 전쟁이 끝나면 사라질 영령. 주군이니 뭐니 하는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야네는 자신이 그에게 '주군'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어떤 무엇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그저 우연히 아야네의 서번트로 소환된 것 뿐이었다. 저렇게 전적인 신뢰와, '충성'이라고 불릴만한 무언가를 받을 자격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계약이."
나직하고, 상냥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아야네의 귓가에 닿았다.
"주군께는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지금 이 현세에서 당신을 모시겠다고 한 맹세이자 약속이었습니다."
"난 당신에게 해 줄 게 없어....!"
"제가 이곳에 존재하고 싸울 수 있는 모든 힘은,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까? 제 '존재'를 지탱해 주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주군입니다."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누구라고 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아야네 본인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마스터이자 '주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지마저 느껴지는. 할 말을 잃은 아야네가 랜서를 바라보자, 그의 눈가가 약하게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자신을 저런 시선으로 봐 주던 사람이 누가 있었지. 이젠 희미하기까지 한 기억속의 어머니가 전부였다. 저렇게 전적으로 신뢰해 주는, 다정하기만 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던 사람은.
"그러니, 부디 부정하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은 제 주군이고, 저는 당신의 '기사'입니다. 이 현세에 절 머무르게 하는 유일한 존재도 당신이고, 전 그런 당신께 '생명'을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생명'이라는 말에 아야네는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말을 삼켰다. 이미 한 번 죽은 영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삶'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자 오른손의 령주와 마술사로서의 자신이 무서울 정도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야네는 그 무게감에 힘없이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이렇게 쉽사리 기운이 빠지는 상대도 오랜만이었다.
"항복."
"... 예?"
"항복, 이라고. 주군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마음대로 해. 그게 랜서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다만, 내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니까."
"그렇게까지 불편하십니까?"
난처한 듯 묻는 랜서의 목소리에 아야네는 어깨를 으쓱 하며 침대 위에서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누군가와 숨김없이 얘기해 본 건 얼마만이더라,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익숙하지 않아. 한 번도 그렇게 불려본 적도 없고,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날 신뢰하고 '충성'이란 걸 바치는 걸 받아본 적도 없으니까.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하지만."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으며 랜서를 똑바로 바라본 아야네는 약간 당황한 기색의 그를 보며 쿡, 웃었다. 신기하달까, 그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놓였다. 같은 배를 탄 운명이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어떠한 요구도, 의심도 하지 않는 상대여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의 태도가 지독하게 호의적이어서일까. 어찌되었든 상관 없었다. 그저 그의 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보면, 불안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랜서에겐 그게 당연한 거겠지. 그렇다면 그 정도는 맞춰줄 수 있어. 마스터, 라는 거 어떤 의미론 비슷하니까."
랜서의 눈동자 안에 비치는 자신이 이질적일 정도로 편한 표정이어서, 아야네는 속으로 조금 놀라며 웃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날 믿어주고 뭐든 다 해 주겠다고 나서면 쓸데없이 기대고 어리광 피울지도 몰라, 나."
물론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무거워 진 분위기가 싫어 던진 반 농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농담에 랜서는 웃었다.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눈가를 살풋 좁히면서. 아야네의 자세가 저도 모르게 풀어졌다.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팔이 풀리고, 세우고 있던 무릎이 스르륵 내려갔다. 침대가에 무방비하게 놓인 왼손을,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온 랜서가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처음 계약하던 그 때 처럼, 자연스레 한 쪽 무릎을 꿇고는 살짝 몸을 숙였다. 손등에 닿은 미약한 온기와,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은 숨결에 아야네의 등줄기가 굳었다. 가볍게 닿았던 입술을 뗀 랜서가 고개를 들고 웃었다.
"얼마든지, 나의 주군."
그 순간, 아야네는 진심으로 '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가 자신의 서번트여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약한 한숨을 내쉰 아야네는 잡힌 손을 뺄 생각도 딱히 하지 않고는 랜서를 마주보고 웃었다. 불안은 앙금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 after
"하지만 역시 주군, 이라는 말은 조금 부담스러운데."
"그럼 어떻게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글쎄... 그냥 이름은 안 돼?"
"그것만은... 제겐 어려운 명이십니다."
"령주라도 써버릴까... 한 번만 해 보면?"
"....."
"... 랜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역시 무리입니다."
"...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렇게 난처한 표정 하지 마."
"... 그렇다면, 아야네 '님'이면 되겠습니까?"
".... 아냐, 그게 훨씬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랜서가 편한대로 해."
"예, 주군."
+ 절 라 다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랜서는 마스터가 여자면 기사도 + 신사도(?)가 발휘되어 더더더 잘 대해줄 것 같지 말입니다.
+ 물론 마스터가 자기에게 반하면 곤란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 다행히도 이번 마스터는 안 그런 거 같으니까 상냥 다정 폭발.
+ 제 희망 사항입니다. 네 그렇다구요...